24/01/2010

Vertigo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는 원하는 시상을 두고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승려가 달 아래서 문을 두드린다┃'이 좋을지 아니면 '승퇴월하문┃僧堆月下門.승려가 달 아래서 문을 밀친다┃'이 좋을지를 두고 고민에 잠겼다. 이는 퇴고라는 말(의식)이 탄생한 일화이다. -하라 켄야"백"에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사고경로를 통해 다양함을 넘어 유월된 지식의 과부하를 겪고 있는 실정에서 현대사회에 개개인은 나르시즘에 쩔어 객아를 잊은지 오래다.
남용하는 자기소개위주의 홈페이지만 봐도 소위 나는 손발이 오그라들어 없어질 지경이다.
아마 그들은 퇴고라는 의식을 경험하지 못한 바로 추정코 싶다.
가도는 고요함속에서 문을 미는것과 두드리는 것의 커다란 차이와 그 파장을 염두했을 것이다.두드리는 것은 소리를 동반하는 것과 같이. 이미 언어로 정착되어 쓰여진 글은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후에 돌이킬 수 없는 흔적과 기록이되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은 타자에게 노출되었을 때 이미 나로 분해 있다. 이러한 경험은 소수에 마주하지 않은 지극히 일반적인 개념이다. 내가 저장한 글은 '나' 이고 내가 첨부한 사진은 '나의 영상'인데 그들은 매우 경솔한 편이다. 이 글에서 "그들"은 심히 이분법적인 사고로 지칭된 사람들이지만 사실인걸 어떡해.(사실 예술가를 지향하는 삶이 아니라면 내가 생각하는 퇴고라는 개념을 무심히 지나쳐도 지당하다.)
에고트립과의 경계에서 확고한 정절을 지키는 것은 불가분의 역설을 표함과도 같기에 나 또한 나르시즘에 허덕이지만 정도를 지키며 최대히 객아를 찾으려 애쓰고있다. 허나 퇴고를 유념하기엔 인터넷의 이미 수많은 언어가 중립적인 얼굴로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글과 사진에는 나의 영상이 담겨져 있기에 한보로 설달호지 아니하고 미의식을 계승한다면 야만의 기록을 간직한 콜로세움을 아직도 아름다운 건축물로만 생각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자아의 버티고를 격지 않도록 그들이 여백을 생각했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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